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좋아한다는 말은 정말 자주 사용된다. 어떤 음식을 좋아한다던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던가, 아니면 좋아하는 일을 하라던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궁금해졌다. 좋아한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음식1으로 논의를 한정 지으면, 이것에 대해 답하는 것은 쉬워 보인다. 그것은 맛있다는 감정과 연관된다. 맛있다라는 감정을 주는 음식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음식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A라는 음식에 대하여 누군가 “너는 A를 왜 좋아해?“라고 물을 때, 그 사람은 내게 “맛있어서"라는 대답을 원하는 것일까? 이것은 분명치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두 가지로 한정된다는 점이다. “그냥 맛있어서"와 “A는 B와 C라는 특성이 있어서 좋아” 가 그것들이다.
이러한 특징은 이성2에 대한 감정에도 발견된다. 한쪽이 다른 쪽에게 자신을 왜 좋아하는지 묻고, 질문을 받은 쪽은 두 가지 중 하나로 답한다. 차이점이라면 그것의 모범답안이 둘 중 하나로 이미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너라서 좋아.” 만약 이 모범답안이 아니라 너의 눈이 예쁘다는 식의 이유를 포함한 답변이 주어진다면, 아마도 질문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럼 너는 눈이 예쁜 사람은 다 좋아하겠네?”
이것은 분명 논리적으로 타당한 질문이다. 그런데도 이것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 그것은 간단하다.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연역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분명 A를 좋아하는 것은 B와 C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들은 어디서 온 것인가?
내가 볼 때 이유라는 것은 사실 무의식적이다. 우리는 다만 사후적으로 추측할 뿐이다. 페이스북의 성공 이면에는 서로 연결되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의 본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에 대한 학문적 근거는 충분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인간은 연결되는 것을 좋아하고 나는 인간이니까 페이스북을 좋아하지"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하는데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다만 무의식적인 ‘어떤’ 이유로 그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 ‘어떤’에 해당되는 것이 무엇이든, 어느 정도의 신뢰도를 가지든, 그것은 단지 추측일 뿐이다.
페이스북의 사례처럼 그 추측의 신뢰도가 충분히 높은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성에 대한 감정에서 이것은 자주 목격된다. 이상형에 대해 논의할 때, 이상형을 의식적으로 일관되게 유지하려는 생각을 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것은 자주 변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그 시기에 좋아하는 이성이나 관심 있는 연예인을 묘사한다. 이성에 관한 관심은 번식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이것들은 별로 낭만적이지 않기 때문에 쉽게 무시된다. 그렇기에 어떤 이성을 좋아하는 이유라는 것은 성급한 정당화의 성격을 띠게 되고, 그것은 신뢰도가 낮은 추측이 된다.
이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물론 다양한 의미가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관해, 자신이 그것들을 좋아하는 이유라는 것들이 사실상 사후적인 추측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중대한 의사결정 순간까지 귀중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다른 의미도 있다. 그것은 디자인의 본질과 맞닿아있다. 디자인이란 사람들이 좋아하는,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타인 중심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예측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되는 과정은 무의식적이기 때문이다. 그들 자신조차 그 이유를 사후적으로 예측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디자이너가3 그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물론 디자이너들은 올바른 예측도 많이 해낸다. 하지만 그 올바른 예측이란 대부분 과거를 양분 삼은 것이다. 그동안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좋아했다든가 이런 성공사례가 있다든가 하는 것들로 비슷한 것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사람들은 직접 보기 전까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라고 말했다. 결국 그가 해낸 것과 같은 0에서 1로 가는 혁신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과거에 기반한 예측으로는 1에서 n으로 갈 뿐이다.4
그렇다면 0에서 1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더는 예측의 영역이 아니다. 그렇기에 혁신은 작게 시작된다. 일단 자신부터 좋아하는, 또는 충분히 작은 그룹의 사람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좋아하는지 확인하고 피드백을 받아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Y Combinator 같은 성공적인 Seed accelerator에서 설립자들에게 하도록 하는 일과 일치한다. Y Combinator의 공동창립자인 Paul Graham도 자신의 저서에서 이것에 관해 자세히 언급한 바 있다. 부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고,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스타트업들은 0에서 1로 가는 ‘탁월한’ 디자인을 해낸다.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단순하고도 엉뚱한 질문이 탁월한 제품을 디자인하는 스타트업의 행동전략까지 닿게 된 것이다.
Paul Graham은 한 강연에서 “역사에 비추어 봤을 때 큰일을 이루는 비결은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그것을 성장시키는 데에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James Clear도 자신의 저서에서 Small Step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것은 여러 위인과 심리학자들에 의해서도 자주 언급된다.
그리고 이 글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그것은 질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특정 음식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한 연구 결과가 존재하지만, 너무 길기도 하고 이 글의 요지와는 큰 관련이 없기에 언급하지 않았다. ↩︎
나는 동성애에 반대하지 않지만, 그것에 대해 사실상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이성에 대한 관심으로 논의를 한정 지었다. ↩︎
디자이너는 단지 아름다운 외양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사용자의 경험을 증진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사람들이다. 특히 이 글에서 디자이너라는 단어는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를 설계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사용되었다. ↩︎
0에서 1, 1에서 n 이라는 표현은 Peter Thiel의 저서 Zero to One에서 따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