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해는 아직 오지 않았다.

2020년 1월 2일

대부분이 흐릿한 어린 시절의 기억 조각 중 하나는 오늘처럼 새해를 맞아 달력을 바꿔거는 나의 모습인데,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였는지, 그날의 날씨는 어땠는지, 그날 나의 하루는 어땠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하나 기억나는 것은, 달력을 바꿔 걸 때의 나의 기분이다. 모두가 새해를 축하하며 기뻐했던 그 상황이 뭔가 어색하고,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합심하여 나를 속이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했던 그때의 나는 1월의 첫날과 그 전날의 관계와, 12월의 마지막 날과 그 전날의 관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쉽사리 이해하지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어쩌면 그때의 나는 시간에 대해 꽤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원래 날짜라는 것도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닌가. 정신 차려보니 자신이 그저 던져진 몸이라는 것을 깨달은 인간은 떨쳐버릴 수 없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시공간에 날짜라는 나름의 규칙성을 부여했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신이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게 되면서 어린 시절 내가 가진 의문은 자연스레 사그라졌다. 시간에 관한 새로운 깨달음이 생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의 급류를 타고 떠내려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일종의 경외심을 느꼈다. 그렇다면 그날의 나의 의문은 왜 사그라졌는가.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날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차이와 매년 마주쳤기 때문이다.

적어도 학교에 소속되어 있는 동안은, 1월 1일이 된다는 것은 한 학년이 마무리되고 이제 곧 새 학년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 인해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들과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가게 된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옮겨가면서 필연적으로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잘해보자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올해는 숙제 좀 열심히 잘해가야지. 올해는 이불킥 좀 그만해야지. 올해 수능 잘 봐서 대학 가야지. 대학 생활 열심히 해야지.

새로운 다짐들이 반드시 학교 같은 외부환경으로부터만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갈수록 내가 담아야 할 세상은 커졌고 그에 반해 내 그릇은 제자리걸음이었기에. 지난날을 돌아볼 때마다 아쉬움과 부끄러움에 고개를 다시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새해를 기점으로 자신을 위로해야만 했다. 이미 지나간 1년이라고. 이제부터 잘하면 되지 않겠냐고. 그제야 나는 밝은 얼굴로 용기를 내 다짐해 볼 수 있었다. 올해는 다를 것이라고. 올해는 정말 멋있는 한 해를 살아보자고. 오래 전 어린 나의 어색한 눈에 비친 사람들처럼 새해를 축하하고 기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19년이 끝나고 2020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다시 어색함을 느꼈다.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더 이상 설레지 않았다. 새해를 앞두고 준비해둔 다짐도 없었다. 2020년 1월 1일도 2019년 12월 31일과 30일 처럼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내 앞에 놓인 것은 선택권 없이 마주한 19개월 두께의 벽이다.[1]이 벽을 앞에 두고 나는 무엇을 아쉬워하고 무엇을 설레하며 무엇을 다짐할 것인가?

그러므로 나의 새해는 아직 오지 않았다. 다시 한 해가 가고 국방의 의무를 마친 내년 2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미루어진 새해를 맞이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기대와 설렘과 함께 새해를 맞는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감사한 일 아닌가? 그러니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1. CHANGMO(창모) - Aiya (아이야) (feat.Beenzino)의 가사를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