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us Ticket Theory of Genius

  • 본문은 프로그래머이자, 벤처 기업 투자가, 수필가인 Paul Graham의 개인 블로그에 업로드된 에세이를 저자의 허락 하에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의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읽었을 때의 자연스러움을 우선시하여 번역했습니다. 부족한 영어실력과 번역 경험 탓에 다소 부정확하거나 어색한 문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댓글로 알려주시면 조치하겠습니다.

  • "역자 주"로 끝나는 괄호 안 문장은 필자가 독자의 이해를 위해 덧붙인 설명입니다.

  • Genius는 천재, 또는 천재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에 원문의 모든 genius는 천재성으로 해석하였습니다. 또한 원문에서 사용된 Great work는 업적이라는 의미에 좀 더 가까워 보이나, 업적은 필요 이상으로 무거운 느낌을 준다고 판단해 훌륭한 일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원문에서 If the recipe for genius is simply natural ability plus hard work~이라는 문장을 봤을 때 genius 자체가 great work와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고 판단됩니다. 다시 말해 번역된 본문에서 천재성은 훌륭한 일, 훌륭한 일을 해내는 것, 훌륭한 일을 해낸 사람 등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점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원문 링크 : http://www.paulgraham.com/genius.html

2019년 11월
천재성에 관한 버스티켓 이론

모든 사람들은 훌륭한 일(great work)을 해내려면 재능과 투지 둘 다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외에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한 가지 요소가 더 있다. 특정 주제에 관한 강박적인 관심이 바로 그것이다.

이 점을 설명하려면 나는 어떤 집단의 사람들에게 평판을 잃을 필요가 있는데, 나는 그 집단으로 버스 티켓 수집가들을 선택할 것이다.[1] 그들은 옛날 버스 티켓들을 모으는 사람들이다. 다른 수집가들처럼, 그들은 그들이 수집한 것의 세부사항에 대해 강박적인 관심을 가진다. 그들은 다른 이들이 관심을 갖지 않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다른 종류의 버스 티켓들 사이의 차이를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옛날 버스 티켓에 대해 생각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질문은 그와 같은 강박에 관한 두 번째 특징을 드러낸다. 거기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버스 티켓 수집가의 사랑은 어떤 대가도 기대하지 않는다(disinterested)[2]. 그들은 우리를 감동시키거나 그들 자신을 부자로 만들기 위해 버스 티켓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자기만족일 뿐이다.

훌륭한 일을 해낸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면, 당신은 일관된 패턴을 보게 된다. 그들은 흔히 대부분의 동시대인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뭔가에 버스 티켓 수집가와 같은 강박적 관심을 갖는 것으로 시작한다. 생물학자 다윈(Dawin)의 비글(Beagle) 여행에 관한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특징 중 하나는 자연사에 관한 그의 순전한 깊은 관심이다. 그의 호기심은 무한해 보인다. 수학자인 라마누잔(Ramanujan)도 급수에 대해 그와 마찬가지의 관심을 보였다.[3]

그들이 후에 해낼 발견들을 위한 '기초공사’를 하는 중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수다. 그것은 그들을 칭송하려는 의도의 결과일 뿐이다. 사실, 그들은 단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버스 티켓 수집가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라마누잔과 버스 티켓 수집가는 다르다. 급수는 중요하고, 버스 티켓은 그렇지 않다.

만약 내가 천재성을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뭔가 중요한 것에 관한 무조건적인(disinterested) 강박을 가지는 것’.

내가 이 글의 도입부에서 말했던 다른 두 가지 요소를 잊은 것 같은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단 아니다. 어떤 주제에 관한 강박적 관심은 능력의 대리인이고 투지의 대체품이다.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수학적 재능이 있지 않다면, 당신은 급수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어떤 것에 관해 강박적으로 관심이 있다면, 많은 투지는 필요치 않다. 호기심이 당신을 당겨 줄 때는 스스로를 세게 밀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강박적 관심은 심지어 당신에게 무엇이든 가능할 정도의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다. 파스퇴르(Pasteur)가 말했듯이, 기회는 준비된 이에게 호의를 배운다. 그리고 누군가 강박적 관심을 갖고 있다면, 분명 준비되었을 것이다.

무조건성(disinterest)은 이런 종류의 강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진실성 있는 이를 가려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향한 길은 불확실해 보이는 경향이 있다. 만약 그것이 확실해 보인다면, 다른 사람들이 벌써 그 길로 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훌륭한 일을 해난 사람들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간과한 길을 알아봤을까? 그들에게는 단지 더 나은 눈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 가장 흔한 설명이다. 그들은 너무나 재능 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놓친 길이 그들에게는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면, 그것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윈이 다른 사람들보다 개별 개체들에 더 큰 관심을 가진 것은 그것이 훌륭한 발견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고, 그것은 실제로 그랬다. 그는 단지 정말, 정말 그런 것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다윈은 그것을 멈출 수 없었다. 라마누잔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숨겨진 길들을 찾아낸 것은 그것들이 유망해 보였기 때문이 아니라,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야심만만하기만 한 사람이 무시했을 길을 그들이 따라간 것은 단지 그 이유였다. 어떤 이성적인 사람이 위대한 소설을 쓰는 것이 톨킨(Tolkien)처럼 상상의 엘비언 언어를 창조하거나 트롤로페(Trollope)[4]처럼 영국 남서부의 모든 가정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생각하겠는가?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톨킨과 트롤로프도 마찬가지다.

버스 티켓 이론은 고통을 감내하는 무한한 인내력을 가진 이가 천재라는 칼라일(Carlyle)의 유명한 정의와 유사하다. 그러나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칼라일은 무한한 인내력의 근원이 무한한 성실성임을 의미한 것으로 보이지만, 버스 티켓 이론은 그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또한 버스 티켓 이론은 그 정의에 중요한 조건을 추가했다. '뭔가 중요한 것’에 관한 고통을 감내하는 무한한 인내력을 가진 이가 천재라는 것이다.[5]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하다는 것인가? 이 질문에 확신을 가지고 답하기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누구도 당신이 관심 있는 분야가 당신으로 하여금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줄 것인지 미리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강박적 관심을 보이는 어떤 분야가 중요한지 어림짐작(heuristics) 해볼 수 있는 방법들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다른 누군가가 만든 것을 소비하는 쪽보다 직접 만들어내는 쪽이 더 높은 가능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당신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어렵고, 다른 이들이게는 특히 더 어려운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재능 있는 사람이 가지는 특정 분야에 대한 집착은 더욱 그렇다. 재능 있는 사람이 아무것이든 간에 관심을 갖는다면, 그것은 사실 "아무거나"가 아니다. 그것은 중요한 것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뭐든 확신할 수는 없다. 사실, 흥미로운 생각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사실로 밝혀질까 봐 두렵다. 훌륭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낭비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많은 분야에서 보상은 위험에 비례한다. 만약 이 규칙이 여기에도 적용된다면, 정말 훌륭한 업적으로 이끄는 길을 찾는 방법은 불확실한 것으로 판명된 일들에 기꺼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사실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 뭔가 흥미로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시간 낭비가 되는 일은 겉보기에 매우 어려워 보인다. 대부분의 것들이 결국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과 보상 사이의 관계에 관한 규칙은 너무나 강력해서, 어디든 위험이 따르는 곳에는 모두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뉴턴(Newton)의 경우에 그 규칙은 사실인데, 그는 세상을 묘사하는 데 수학을 사용한다는 아이디어, 유례없이 훌륭한 결실을 가져다준,에 대한 집착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는 연금술과 신학에도 강박적 관심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들 결국 실패했으며 그것은 완벽한 시간 낭비였다고 보인다. 우리가 지금 물리학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그의 관심은 나머지 두 가지보다 큰 성과가 되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큰 발견을 하는데 지장을 주는 것을 감수할 정도로 나머지 두 가지가 필요한 것이었을까? 난 잘 모르겠다.

한 가지 더 걱정스러운 아이디어가 있다. 어떤 사람이 관심을 보이는 모든 대상이 쓸모없는 것일 수 있을까? 뉴턴의 연금술과 신학처럼 말이다.[6] 이런 일은 꽤나 자주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유명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어떤 길을 걷는 것이 어떤 결과물을 안겨 줄지 예측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에 따라 극적으로 변한다. 1830년은 자연사에 강박적 관심을 보이는데 좋은 시기였다. 만약 다윈이 1809년 대신 1709년에 태어났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을 것이다.[7]

이러한 불확실성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 가지 해결책은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hedge your bets). 이것은 당신만의 관심 대신 분명히 유망한 길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당신이 위험을 줄이면 보상도 함께 줄어든다. 만약 당신이 관습적으로 유망한 길을 따라가기 위해 원하는 것을 포기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발견했을지 모르는 아름다운 것을 놓치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너무 자주 일어난다. 어쩌면 이것은 어떤 천재가 그의 어떤 관심에서도 훌륭한 결과물을 내지 못하는 것(genius whose bets all fail)보다 더 많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또 다른 해결책은 다양한 대상에 관심을 갖은 것인데, 이 방법에도 위험은 있다. 당신이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당신은 그 어떤 것도 깊게 탐구하지 못할 것이다.

버스 티켓 이론에 관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이 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각 다른 분야에서 탁월한지에 대한 설명을 돕는다는 것이다. 흥미는 능력에 비해 불균등하게 분배된다. 만약 훌륭한 일을 해내는데 필요한 것이 재능뿐이라면, 그리고 재능이 균등하게 분배된다면, 당신은 다양한 분야에서 실제로 훌륭한 일을 해낸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가 보는 왜곡된 분포를 설명할 정교한 이론을 발명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불균등(skew)은 더 간단한 설명을 제시한다. 서로 다른 사람은 서로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진다.

버스 티켓 이론은 또한 왜 사람들이 아이를 가진 후에 훌륭한 일을 해낼 가능성이 낮은지 설명한다. 아이를 가진 후, 어떤 일에 대한 흥미는 외부 장애물 뿐 아니라 아이에 대한 관심과도 경쟁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관심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압도적으로 강력하기 때문에, 일할 시간을 갖기는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사실 일할 시간을 갖고 싶지도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버스 티켓 이론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것이 훌륭한 일을 해내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만약 천재성(훌륭한 일을 해내는 것 - 역자 주)이 단순히 재능과 노력의 결과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풍부한 재능이 있기를 바라고,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만약 흥미가 천재성의 결정적 요소라면, 우리는 흥미를 개발함으로써 천재성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매우 야망 있는 이들에게 버스 티켓 이론이 제안하는 것은 조금은 느긋해지라는 것이다. 이를 갈며 부지런히 당신의 친구들이 가장 유망한 연구분야라고 인정하는 것을 쫓는 대신, 어쩌면 당신은 단지 재미를 위해 뭔가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만약 막힌다면, 그 길이 당신이 개척할 분야가 될 수 있다.

나는 항상 해밍(Richard Hamming)의 유명한 이중적 질문을 좋아해왔다. “당신의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 그리고 왜 당신은 그것에 대해 연구하고 있지 않는가?” 이것은 당신 스스로를 끌어올리기 좋은 질문이지만, 다소 과할 수도 있다. 최소한 당신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는 것은 유용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1년간 정말 흥미롭지만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 될 것인가?”[8]

버스 티켓 이론은 또한 당신이 나이 들어감에 따라 느려지는 것을 피할 방법을 제시한다. 어쩌면 사람들이 나이 들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잘 내지 않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갈수록 날카로움을 잃고 있어서(losing their edge)가 아니다. 그것은 일단 당신이 자리를 잡고 나서는, 아무도 당신이 한 일을 신경 쓰지 않던 젊은 시절과 달리 당신이 더 이상 무책임한 사이드 프로젝트(side project)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이기도 할 것이다. (side project는 대단한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흥미와 재미를 위해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유능한 프로그래머 또는 해커들은 수시로 side project를 진행하며 이것이 큰 조직에 의해 진지하게 설계된 것보다 훌륭한 결과물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것은 왜 혁신은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에서 일어나는지 와도 일맥상통하며,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 디자인적 사고, 해커 문화나 오픈소스 등과도 관련이 깊다. - 역자 주 )

이것에 대한 해결책은 분명하다. 계속 무책임한 채로 있어라. 이것은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무뎌지는 것을 늦추기 위해 진행하는 겉보기에 무작위적인 프로젝트가 외부인에게는 바로 그 증거로 읽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 자신도 그들이 틀렸다고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side project - 역자 주)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므로, 최소한 더 즐거울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아이들로 하여금 버스 티켓을 수집하는 습관을 가지게 할 수도 있다. 교육의 일반적인 계획은 넓게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좁은 분야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들에게 반대로 교육한다. 나는 그들의 학교에서 넓은 분야를 잘 교육해 줄 것을 믿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에게 좁고 깊은 부분을 보게 한다. (바로 뒤에도 나오겠지만 버스 티켓을 수집하는 것처럼 아이들이 관심 있는 분야에 깊게 몰입하도록 장려한다는 의미 - 역자 주)

아이들이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면, 그것이 얼마나 무작위적이든, 나는 그들이 버스 티켓 수집처럼 터무니없고, 깊게 들어가도록 장려한다.[9] 나는 버스 티켓 이론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느꼈으면 해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그들을 가르치려 한다고 절대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관심 있는 길을 스스로 걸어가야 한다. 나는 그들을 최소한으로 통제하면서 따라갈 뿐이다. 깊이는 단지 부산물일 뿐이지만, 그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보여주려다 보면 결국 깊게 들어가게 된다. 물론 이것은 좋은 일이다

이것이 어떤 효과가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면 그 불확실함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훌륭한 일을 해내는지에 관해서는 더 배워야 할 것이 정말 많다. 인류 문명이 얼마나 오래되었든, 만약 우리가 아직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정복하지 못했다면, 아직 너무 어린 것이다. 발견에 대해 발견해야 할 것들이 아직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흥미롭다. 만약 그런 종류의 일이 당신의 관심분야라면 말이다.


  1. 버스 티켓보다 이 논점을 잘 표현하는 다른 종류의 수집도 존재하지만, 그것들은 더 유명하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취미가 중요하지 않다고 공격하는 것보다는 열등한 예시를 드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

  2. 나는 "disinterested"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조금 걱정됐다. 많은 사람들이 그 뜻을 "not interested"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재가 되기를 기대하는(=훌륭한 일을 해내기를 기대하는. - 역자 주)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기본적인 단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그들이 이 글을 통해 이제라도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

  3. 천재가 얼마나 자주 사람들이나 스스로에게 "그만 허튼짓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라"라는 말을 듣고 초기 단계에 멈췄을지 생각해봐라. 라마누잔의 어머니는 거대한 지원자였다. 그녀가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봐라. 라마누잔의 부모님이 그가 집에서 빈둥거리며 수학을 하는 대신 나가서 직접을 가지도록 만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봐라.

    다른 한편으로는, 누구든 바로 위 문단을 직업을 갖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실수다. ↩︎

  4. 트롤로페는 우편 노선체계를 구축했는데, 그는 그 목표를 추구하는 강박관념을 느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자에게 열정이 어떻게 싹트는지 보는 것은 재미있다. 그 2년 동안 시골의 편지 배달부들로 나라를 뒤덮는 것은 내 인생의 야망이었다.”

    심지어 뉴턴도 가끔 그의 강박관념의 정도를 감지했다. 원주율을 15자리까지 계산한 뒤에, 그는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나는 그 어떤 다른 일도 하지 않으면서 얼마나 많은 계산을 수행했는지 너에게 말하는 것이 부끄럽다. "

    우연히도, 라마누잔 또한 강박적인 인간 계산기였다. 카니겔(Kanigel)의 훌륭한 전기를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라마누잔의 한 학자인 B. M. 윌슨은 나중에 어떻게 라마누잔의 숫자 이론에 대한 연구가 종종 “보통 우리 대부분이 위축될 정도로 그의 숫자 계산은 길었다”. ↩︎

  5. "An infinite capacity for taking pains(고통을 감내하는 무한한 인내력)"라는 문장은 칼라일이 실제로 적은 것의 재진술이다. 그가 그의 저서 History of Frederick the Great에 적은 원문은 다음과 같다. “… it is the fruit of ‘genius’ (which means transcendent capacity of taking trouble, first of all)…” Since the paraphrase seems the name of the idea at this point, I kept it. ↩︎

  6.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하는 것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뉴턴이 신학을 연구하기로 했을 때, 그는 이 차이에 직면했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역설을 쫓는 것은 의미 있지만, 신성한 문장에 담긴 역설들 쫓는 것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그가 이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했다. ↩︎

  7. 1709년의 다윈은 밀라노의 레오나르도가 우주에 있는 것과 같다. ↩︎

  8. (역자) Paul Graham의 원문에 Richard Hamming의 글 "You and Your Research"이 링크되어있는데, 서울대학교 이광근 교수님께서 해당 글을 직접 번역해주셨다. ↩︎

  9. 사람들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향은 얼마나 선천적인 것일까? 지금까지의 나의 경험은 그것이 대부분 그렇다고 말해준다. 다른 아이들은 다른 대상에 관심을 가지고, 그 아이가 다른 대상에 지속적인(not in a way that sticks) 관심을 가지도록 만드는 것은 어렵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각 분야들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소개되도록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하는 따분한 훈련이 수학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 그러한 예시가 될 것이다. 그 이후, 나머지는 아이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