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함에 관한 역설
나는 살면서 겸손해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나쁜 조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학에서 20점을 맞은 친구가 나에게 어떻게 30점을 맞았냐고 물을 때, 내가 수학을 잘하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조언이 부적절한 곳에 사용되는 것도 많이 본다. 예를 들어 A가 B에게 다가와 “이번에 C에서 상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대단하십니다.”라고 말할 때, “아 아닙니다. 제가 뭘요. 다 운이 좋아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B가 정말로 운이 좋아서 그 상을 받은 것일까? 아마 운보다는 더 주요한 요인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A는 그 사실을 알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것과 관련되어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겸손하다’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다. 전자는 대단히 바람직하며, 삶의 전반에 있어서 유지해야 할 태도라고 할만하다. 하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조금 조심스럽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를 내세우는 것이 남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탓에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놓치곤 한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것은 언제나 현명한 선택일까?
자기를 내세우지 말라는 조언이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특히 특정 문화권에서는 자신을 내세우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겸손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차치하고 비즈니스나 개인의 커리어에 집중해보자. 면접에 가서 “저는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그동안의 성취는 전부 운이 좋아서 이룬 것입니다”라고 할 수는 없다. 누구든 자기를 내세워야 할 때는 찾아온다. 그러나 자신을 불필요하게 내세우면 많은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
제럴드 마빈 와인버그의 저서 컨설팅의 비밀에는 와인버그가 고객에게 자신이 유명한 작가임을 열심히 설명하는 것을 보고, 한 훌륭한 컨설턴트가 해준 아래와 같은 조언이 실려있다.
스스로 그렇게 열심히 선전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당신이 거짓말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을 신뢰하지 않겠죠. 그리고 당신 제안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자신을 신뢰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당신 제안을 절대 따라 하지 않을 것이고요.
신뢰란 예측 가능성이다. 와인버그가 유명한 작가라는 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고객은 그가 직접 말하기 전까지 몰랐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객이 그의 말을 믿지 못하면 그는 사기꾼이 되는 것이고, 믿는다고 하더라도 예측 가능성은 깨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고객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부터 잃는다.
그러면 다시 처음 예시로 돌아 가보자. B는 그동안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내세워 본 적이 없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래도 그의 능력을 알아보겠지만, B와 같이 일하지 않는 A는 아니다. 그래서 A는 B가 상을 받은 것에 대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서 B가 취할 수 있는 행동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계속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저는 한 것이 없습니다. 운이 좋았는걸요.” 이 말을 들은 A는 B의 정직함에 대해서는 더 신뢰하겠지만,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기존의 평가를 유지할 것이다. 만약 A가 B에게 중요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면, B는 두 번째 옵션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것은 자신을 선전하는 것이다. “아 이번에는 제가 정말 열심히 했고요. 특히 이 부분은 제 전문분야라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정말 안타까운 점은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신뢰에는 정직과 능력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전자만 가진 사람은 바보, 후자만 가진 사람은 외톨이와 같다. 자신의 정직함 뿐 아니라 능력에 대한 신뢰도 관리하고 싶다면, 언제 자신을 선전할지를 현명하게 선택해야 해야한다. 겸손함이란 상대가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때만 실현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능력을 가꾸는 것만큼 그것을 나누고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쪽에서 겸손하려면 다른 쪽에서는 자신을 선전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돕고 유익한 글을 써라. 모임에 참여하고 스터디를 조직하라. 짝 프로그래밍을 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발표하라. 오픈소스에 기여하고 자신의 배움을 공유하라. 주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에 관해 이야기하게 하라.
이렇게 하는 것은 자신을 알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결국 배움을 가속화하고 훌륭한 사람들과 놀라운 기회를 안겨준다. 이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많은 지면을 차지할 것 같으니,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와인버그의 글 일부를 인용하면서 마치겠다. 나는 여러분을 위해 이 책을 쓰는 게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해 쓴다. 사실 이것이 내가 컨설팅을 하는 이유다. 왜냐면 남을 도우려고 노력하다 보면 항상 남을 돕는 것보다 나를 돕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이다.